Rådebank는 자동차 엔진에서 나는 노킹소리와 비슷한 소음을 말한다. 무언가 고장 났다는 신호를 파악하지 못 하고, 무관심으로 돌보지 않으면 나중에 고치기 위해 큰 수고가 든다. 여기 마음의 rådebank를 달래는 것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해, 모든 것을 괜찮은 척 숨기는 사나이 GT(글렌토레)가 있다.
노르웨이에도 레드넥이 있을까?
선뜻 보기 어려운 시리즈였다. 거친 사람들. 예들들어 자동차 음악을 크게 틀고 창문으로 담배를 피워 대는 사람을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어쩐지 그런 사람들이 잔뜩 나올 것만 같은 시리즈였기 때문이다. Råner라는 단어를 노-영 사전에서 찾아보면 레드넥이나 힐빌리가 나온다. 하지만 노-노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동차를 아끼고 시간이 났을 때 목적없이 드라이빙 하기를 즐기는, 그러니까 굳이 비슷한 것을 찾아보자면 ‘폭주족’과 ‘자동차 동호회’가 반반 섞인 듯한 설명이다. 노르웨이는 복지 제도에 힘입어 경제와 교육에 따른 계층이 미국만큼 확연하고 광범위하게 나누어지지는 않다 보니, 억지로 구분을 해보자면 Råner들은 레드넥의 성향(마초적임. 대학 교육을 선택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며 유기농보다는 더블 베이컨 햄버거를 즐김)을 일부 공유하지만, 영어처럼 계층적 낙인이 크게 관여하는 단어는 아니다. 예를들어 råner를 뜻하는 이미지는 일단 젊어야 하는데, 젊기 때문에 자동차를 사랑하며, 단순하고 쌈빡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가난과 무식에 방점이 찍혀 있기 보다는, 차에 대한 과도한 사랑과 단순한 라이프 스타일에 방점이 찍혀 있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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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의 GT는 마을에서 제일 잘 나가는 남자로, <미녀와 야수>의 개스톤과 같은 사내다. 동네의 모든 여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남자들은 그를 우러러보고 리더로 인정한다. 멋진 GT는 안타깝게도 최근 오래 사귄 Ine와 이별을 했다. 그는 쿨남답게 이별 따위에 속상해하지 않고 자연을 향해 시원하게 친구들과 오줌을 갈긴다. 진짜 남자는 사랑에 울지 않으니까.
Rådebank는 총 8개의 짧은 에피소드로, 직접적인 소재는 자동차와 자동자를 사랑하는 Bø 지역의젊은이들이지만 수면 아래 놓인 것은 삶의 고난을 마주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모두 한 번은 겪었던 젊은 날의 열병 같은 사랑을 솔직한 방식으로 보여주는데, 그래서인지 볼수록 조금은 민망하다. 마치 우리 나중에 서른살까지 둘 다 애인 없으면 결혼하자고, 한국의 많은 십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약속을 속삭여 둔 것처럼 그때라서 가능했고, 풋풋하고 아름답다고 기억할 수 있는 시절의 ‘노르웨이 판’이다.
리뷰를 쓰기 전에 이리저리 정보를 찾다 보니, 청소년의 교육적인 글쓰기 소재로 이 시리즈가 이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첫번째는 삶의 역경을 다루는 기술과 공중보건(Livsmestring og folkehelse)의 영역에서, 두번째는 자신과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råner)의 시각을 이해해 보기 라는 포인트로 진행되고 있었다. 다소 거칠고, 법의 테두리를 넘어버리는 젊은이들이 대거 나오지만 결국은 아이들과 함께 봐도 괜찮은 시리즈다. 여러모로 편견을 가지고, 안 봤으면 후회할 뻔한 시리즈였는데, 나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으로는 앞으로는 차에서 나오는 과도한 음악소리를 조금은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줄평: GT의 엄마는 배우가 되기 위해 미국에 건너 갔다고 하는데, GT의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여주기 위한 복지국가의 드라마 설정은 약간은 뜬금이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