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은 많은 경우 불청객으로 그려진다. ‘나의 일자리를 빼앗으러 온 약탈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쓰는 불결한 사람’, 혹은 ‘현지 문화는 배우려 하지도 않은 채 끼리끼리 살면서 세금만 축내는 자들’. 노르웨이에 살고 있는 아시안은 소수이기에 최근 급격히 증가한 무슬림 인구처럼 노르웨이 내에서 가시적인 혐오의 대상이 되지는 않고 있다. (최근 Aftenposten의 기획기사에 따르면 노르웨이 내 6년간 혐오범죄 케이스를 분석해 보았을 때, 어두운 피부 색깔과 무슬림에 대한 혐오가 가장 큰 부분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듯이 동양인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착한 이민자, 비 가시적인 인종으로 치부되긴 하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고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사회에서의 삶은 언제나 조금은 피로하다.
여기 <왕좌의 게임> <밴드 오브 브라더스>, <섹스 앤 더 시티> 등으로 유명한 HBO가 처음으로 노르웨이어로 제작된 시리즈를 내놓았다. 막강한 자본 투자와 더불어 고도의 상품성도 고려하는(그러니까 재미가 당연히 있는 시리즈를 만드는) HBO의 손을 거친 작품이라 기대가 컸다. 제목은 Beforeigners. 이방인(Foreigners)의 이야기인데 과거(Before)에서 온 이방인의 이야기다.
평화로운 노르웨이의 밤. 갑자기 물속에서 사람들이 솟아난다. 아일랜드어를 하는 이민자들인 줄 알았는데 고대 노르웨이어를 쓴다. 갑작스러운 현상으로 과거의 조상님들이 현재의 땅에 동시다발적으로 소환되고 있는 상황.
그 후로 n년 후. 이들은 철기 – 중세처럼 각각 다른 시간대에서 온 사람들로 현생 인류와 함께 살아간다. 이들을 위한 정부 부처도 새로 만들었지만 (이민국처럼) 현대 지식이 전무하고 살던 습관대로 살다 보니 사회 게토화에 일조를 하며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길에서 살기로 작정한 중세인들은 현대의 부랑자들과 겹쳐 보인다.
시리즈의 주인공은 평범한 남자 경찰과 타시간대 이민자 중에서 처음으로 경찰이 된 알프힐드르. 서장은 다(多)시간 화합의 상징인 그녀를 경찰서의 마스코트처럼 자랑스럽게 소개하지만 이름이 어려워 발음도 잘 하지 못한 채 얼버무린다. 알프힐드르는 현시대의 경찰관으로 살아가지만, 과거 바이킹 시대의 기억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전쟁을 피해 난민으로 왔으나 마음속에 전쟁을 완벽하게 지울 수 없는 어떤 사람들을 표현한 것일까. 과거의 적과 인연은 새로운 사회까지 쫓아와 영향을 미친다.
Beforeigners는 “조상들이 현실에 나타난다면?” 이라는 뻔한 좌충우돌식 에피소드를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풀어 놓지 않고, 영화적 상상력을 이리저리 확장시킨다. 예를 들어 트렌스젠더의 존재가 현대인의 당연한 상식이라면, 다시간 사회에서는 트랜스템포랄 (현대인으로 태어났으나 과거에 속한다고 느끼는 사람들, 혹은 그 반대)의 존재가 새로 당면한 상식이 된다. 현대의 자신을 버리고 완전한 구석기인이 될 수 있도록, 치아에 남은 현대적 흔적 -금니나, 레진 치료-까지 싹 제거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이런 깨알 같은 세계관이 시리즈에 현실감을 더한다.
이민 인구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통합하고 있는 노르웨이기에 이와 같은 실험적인 시리즈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민자에게 은근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노르웨이 사람이라도, Norrønt (노르웨이 옛날 말)을 쓰는 바이킹 조상이라면 왠지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을까? 그 사람들은 우리의 조상이고 결국은 시간만 다를 뿐 같은 종류의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 조상님들도 따져보면 우리와 쓰는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심지어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이교도들인데? 그렇다면 내가 싫어하는 현대의 이민자 집단과 너무 비슷한데?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친숙한 바이킹 문화를, 요새의 현실에 떨어뜨리면 얼마나 이민자들과 다를 바 없어지는지 보여주는 방식으로 시리즈는 혐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시즌 1은 노르웨이에 기독교를 전파한 역사적 인물이 부활함을 암시하며 마무리가 된다. 시즌 2에서 종교전까지 아우른다면, 과연 시리즈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무척 기다려진다.
한줄평: 역시 HBO! 제작비 탓에 조금은 밋밋하다고 느끼던 일반 노르웨이 드라마와는 다르다.